1998년 6월. 마닐라 해변가의 호텔. 새벽녘 해변에.
온갖 잡동사니 널부러져 있고.
근처에 있던 엄마가 떠밀어 'help me' 외치며 내 쪽으로 뛰어오는 꼬마.
제법 큰 쇼핑센타. 원형계단 층계에 다닥다닥 소년소녀들이 난간을 잡고 있었다.
가이드에게 왜 저러고 있냐 물어보니 몸을 팔러 나온 아이들이라고.
후덥지근한 마닐라는,
군대시절 내가 기억하는 영등포 뒷길의 술집. -음침한 주황색 불빛- 그랬다.

아스레 들려오는 라틴의 기타소리에 이끌려 들어선 길모퉁이 술집.
황혼에 물든 남국의 꽃, 꽃무리, 색깔 휘황하고
넓은 정원에 파라솔과 안락한 등나무 의자. 무대에 세명의 악사가 연주와 노래를.

나는 마시고. 그들은 나를 위해 노래했다.
-Nostalgia. Adoro. La Bamba. Vaya con Dios. Moniendo Cafe. Maria Elena-
문을 나서면 서성이는 마닐라 사람들의 고단함. 없었다.
내가 두고 온 서울의, 마닐라 못지 않은 복잡한 그딴 것들. 잊었다.

나는 덧마시고 그들은 사랑을, 그리움을, 운명을 노래했다.
드디어
-Historia de un Amor-
노래 앞에 무너졌다.